팀 회의가 끝나고 일주일 뒤, “그때 분명히 A안으로 합의했잖아요”라는 말과 “저는 B안이라고 들었는데요?”라는 반박이 동시에 터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누가 옳은지 가리는 것보다 ‘기록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고려시대 문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며 보여준 태도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건을 문장으로 고정해 공동체의 혼란을 줄이는 힘 말입니다.

문신이 전쟁터에 선 이유
김부식은 1075년 태어나 1151년 사망한 고려 전기의 핵심 관료였습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나라 사신 서긍조차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꿰뚫어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가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문신’이 1135년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돼 직접 삼군을 지휘하며 반란을 진압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김부식이라는 사람의 입체성을 느낍니다. 보통 문신이라고 하면 붓만 들고 정책 문서나 쓰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군사를 직접 통솔할 줄 아는 현실 감각을 가진 관료였습니다. 묘청 세력이 서경(평양)을 중심으로 새 왕조를 세우려 한 움직임은 단순한 지역 반발이 아니라, 고려 왕조의 정통성 자체를 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김부식은 이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동시에, 나중에는 역사 편찬을 통해 ‘왜 중앙 질서가 정당한가’를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제가 불편한 건, 서경 세력의 문제의식이 ‘반란’이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묻혀버렸다는 점입니다. 지방의 불만과 도참사상에 기댄 개혁 요구가 실제로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김부식의 기록 속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승자가 쓴 역사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묘청의 난 이후, 기록으로 질서를 세우다
난을 진압한 뒤 김부식은 윤언이, 한유충 등을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인사를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인사가 번복되자, 그는 정치보복을 염려해 세 번이나 사직 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 행동은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이 내린 결정의 정당성이 훼손됐을 때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팀 프로젝트를 하며 겪었던 일과 비슷한 지점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회의록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어떤 팀원이 “너 혼자 기록 쥐고 있으면 네 맘대로 해석하는 거 아니냐”고 불편함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김부식의 태도를 떠올렸습니다. 기록은 통제가 아니라 ‘합의된 문장’을 남기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저는 회의가 끝날 때마다 “사실-결정-근거-담당-기한” 5줄 요약을 공유 문서에 남기고, 모두가 수정할 수 있게 열어뒀습니다. 평가나 해석을 빼고, 합의된 내용만 남겼습니다.
김부식도 인종의 명을 받아 『삼국사기』 50권을 편찬하며 비슷한 태도를 취했을 것입니다. 고려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되, 신라·고구려·백제의 역사를 ‘한 체계’ 안에 담아야 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목소리는 더 크게 남고, 어떤 목소리는 조용해졌을 겁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김부식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봅니다.
기록이 공동체에 남긴 것
『삼국사기』는 우리나라 현존 최고의 정사로, 고려 왕조가 삼국의 정통을 이었다는 논리를 체계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책이 없었다면 신라·고구려·백제의 역사는 훨씬 더 파편적으로 전해졌을 겁니다. 김부식은 문장으로 국가의 기억을 고정했고, 그 덕분에 후대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따질 수 있는 기준을 얻었습니다.
제가 회의록을 남기기 시작한 뒤 팀 분위기가 달라진 것처럼, 기록은 갈등의 방향을 바꿉니다.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문서에 없는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까”가 논의의 중심이 됐습니다. 책임 회피도 줄었고, 프로젝트는 훨씬 덜 흔들렸습니다. 물론 저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공동체가 움직일 기준을 문장으로 만드는 힘을 체감했습니다.
다만 김부식의 선택이 늘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중앙 질서를 지키기 위해 서경 세력의 요구를 ‘반란’으로만 규정한 건, 지역의 목소리를 지우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삼국사기』가 국가 정통을 세우는 데 기여한 만큼,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는 더 조용해졌을 것입니다. 저는 김부식을 영웅으로 보기보다는, ‘통합’이라는 이름의 이익과 비용을 함께 떠안고 살았던 현실 정치가로 더 인간적으로 읽습니다.
결국 기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쓰느냐, 무엇을 남기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기억이 달라집니다. 김부식이 남긴 『삼국사기』는 고려 왕조의 정당성을 세웠지만, 동시에 서경 세력의 문제의식은 역사 속에서 희미해졌습니다. 저는 이 양면을 함께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의 힘을 인정하되, 그 기록이 누구의 이야기를 담았고 누구의 이야기를 놓쳤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 그게 김부식을 읽으며 제가 얻은 교훈입니다.
함께하는 글
51편. 의천의 교장도감 (정리법, 천태종, 수집체계)
49편. 강감찬의 귀주대첩 (전략적 후퇴, 외교적 승리, 현실 판단력)
48편. 서희의 외교 전략 (담판 기술, 대등한 예, 시간 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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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