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제3대 왕 문왕 대흠무는 737년부터 793년까지 무려 56년간 재위하며 발해를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시킨 군주입니다. 그는 중경현덕부·상경용천부·동경용원부로 이어지는 전략적 천도와 당의 율령 도입을 통해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과 제도화의 이면에는 중심과 변방, 귀족과 피지배층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구조적 모순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대흠무가 즉위했을 당시 발해는 아버지 무왕 시대의 오동성을 수도로 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왕은 발해국의 성장에 따라 더 넓은 영토와 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요충지로 천도를 거듭했습니다. 먼저 중경현덕부로 수도를 옮긴 후, 상경용천부를 거쳐 동경용원부에 이르기까지 주로 만주 동부에 위치한 전략적 거점들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천도는 단순한 수도 이전이 아니라 영토 확장과 행정력 투사를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천도 정책의 핵심은 오동성의 좁음을 벗어나 더 넓은 평야지대와 교통 요충지를 확보하는 데 있었습니다. 상경용천부는 발해 최대의 도성으로 발전하여 당의 장안성을 모방한 격자형 도시 구조를 갖추었고, 중앙 관청과 귀족 저택, 시장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동경용원부는 동해안과 가까워 일본 및 신라와의 해상 교역로를 장악하기에 유리한 위치였습니다. 이처럼 문왕은 각 수도가 지닌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발해의 세력권을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천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백성들의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도성을 건설하기 위해 농민들은 부역에 동원되었고, 귀족과 관료들은 새로운 거점에서 토지와 특권을 재분배받았습니다. 성장의 언어는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중심부와 변방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도가 위치한 중경·상경·동경은 번영했지만, 주변 농촌 지역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으로 고통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 천도 거점 | 위치적 특성 | 전략적 의미 |
|---|---|---|
| 중경현덕부 | 만주 동부 내륙 | 영토 확장 초기 거점 |
| 상경용천부 | 넓은 평야지대 | 최대 도성, 중앙집권 상징 |
| 동경용원부 | 동해안 인접 | 해상 교역로 장악 |
문왕이 이룬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당으로부터 율령을 받아들여 중앙과 지방의 통치제도를 정비한 것입니다. 율령은 형법과 행정법을 체계화한 법전으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통치 시스템이었습니다. 문왕은 이를 발해의 현실에 맞게 수용하여 중앙 관청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지방 행정 구역을 재편했습니다. 이를 통해 왕의 명령이 변방까지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관료제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관직에 대응되는 관품제도를 정리하여 관료제를 확립한 것입니다. 관품제는 관료의 등급을 세분화하고, 각 등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 봉급을 명확히 규정한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귀족 중심의 느슨한 통치 구조를 왕권 중심의 체계적인 관료제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공적에 따라 승진시키는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발해는 안정적인 행정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율령제도가 가져온 ‘질서’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법과 제도가 강화될수록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 관료와 평민 사이의 위계가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율령은 왕권을 강화하고 행정 효율을 높였지만, 동시에 피지배층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도구로도 작용했습니다. 세금 징수와 부역 동원이 체계화되면서 백성들의 부담은 오히려 증가했을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유능한 판단이었지만, 그 판단이 모든 계층에게 평등하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문왕 시대의 율령제도는 발해를 ‘법치 국가’로 만들었지만, 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중앙 관료들은 안정적인 봉급과 특권을 보장받았지만, 농민과 변방 주민들은 엄격한 법 집행 아래 더 무거운 의무를 짊어져야 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 구조는 발해 후기 지방 반란과 체제 불안의 씨앗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왕이 사용한 존호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은 단순한 칭호가 아니라 왕권 강화를 위한 이념적 도구였습니다. 이 존호에는 불교의 전륜성왕 이념이 담겨 있습니다. 전륜성왕은 불교에서 이상적인 군주를 의미하며, 무력이 아닌 정의와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을 뜻합니다. 문왕은 자신을 전륜성왕으로 규정함으로써 왕권을 신성화하고, 귀족과 백성 모두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불교 이념을 통한 왕권 강화는 당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활용되던 보편적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왕은 여기에 ‘대흥'(크게 일으킴), ‘보력'(힘을 돕는다)이라는 표현을 더해 발해의 성장과 확장을 정당화했습니다. ‘금륜’은 불교에서 최고의 전륜성왕을 상징하는 말로, 문왕이 자신의 통치를 최고 수준의 정당성과 연결시키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성법’은 성스러운 법, 즉 불법과 율령을 함께 의미하며, 종교와 법치를 결합한 통치 철학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문왕은 일본과 수차례 사신을 교환하며 외교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발해와 일본 사이에는 727년 첫 사신 교환 이후 문왕 시대에만 30회 이상의 사절단 왕래가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친선 외교를 넘어 당과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였습니다. 일본은 발해를 통해 당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발해는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 위상을 얻었습니다. 문왕은 이처럼 국내 왕권 강화와 대외 외교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왕권 강화가 강해질수록 귀족과 피지배층의 간격도 커졌습니다. 전륜성왕 이념은 왕을 신성한 존재로 격상시켰지만, 동시에 백성과 왕 사이의 거리를 멀게 만들었습니다. 왕이 신성해질수록 백성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중앙 귀족의 권력은 왕권에 종속되면서도 지방에 대해서는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성장의 언어가 누군가의 불평등을 묵인했을 가능성은 여기에서 현실이 됩니다. 문왕의 성공은 발해라는 국가의 성공이었지만, 그것이 모든 발해인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왕권 강화 수단 | 구체적 방법 | 효과와 한계 |
|---|---|---|
| 불교 이념 | 전륜성왕 존호 사용 | 왕권 신성화, 왕-백성 거리 증가 |
| 율령 체계 | 관품제 확립 | 중앙집권 강화, 계층 간 위계 고착 |
| 외교 전략 | 일본과 사신 교환 | 국제적 위상 확보, 내부 자원 소모 |
결국 대흠무 문왕은 ‘국가를 크게 만드는 기술’에 있어서는 탁월했지만, 그 성장이 만들어낸 그늘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천도·율령·왕권 강화는 발해를 동북아시아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중심과 변방,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간격을 벌렸습니다. 역사는 그의 성취를 기록하지만, 우리는 그 성공 뒤에 가려진 불평등까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쉽게 찬양할 수 없는 성공, 그것이 문왕 시대가 남긴 진정한 유산입니다.
Q. 발해 문왕이 천도를 여러 차례 단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문왕은 발해의 영토 확장에 따라 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중경현덕부·상경용천부·동경용원부 등 만주 동부의 전략적 요충지로 천도를 거듭했습니다. 각 수도는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행정력을 투사하고 교역로를 장악하기 위한 거점이었습니다.
Q. 문왕이 도입한 율령제도가 발해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A. 당의 율령제도를 받아들여 중앙과 지방의 통치 체계를 정비하고 관품제를 확립함으로써 왕권 중심의 관료제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행정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중앙 귀족과 피지배층 간 위계를 고착시키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Q.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이라는 존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A. 이 존호에는 불교의 전륜성왕 이념이 담겨 있으며, 문왕이 자신의 왕권을 신성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념적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금륜’은 최고의 전륜성왕을, ‘성법’은 불법과 율령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Q. 문왕 시대 발해와 일본의 외교 관계는 어떠했나요?
A. 문왕은 일본과 수차례 사신을 교환하며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당과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였으며, 발해는 일본을 통해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 위상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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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왕(대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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