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유리왕: 이름 하나가 왕위의 기준이 된 이유

고구려 2대 왕 유리명왕이 초기 고구려 성곽과 정착지를 배경으로 차분하게 서 있는 역사 일러스트

“유리왕”은 본명이자, 기억 방식이다

어떤 왕은 업적으로 불리고, 어떤 왕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고구려의 2대 왕이 흔히 유리왕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리’가 그에게 붙은 별명이 아니라, 개인 이름(본명)으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우리가 교과서나 사전에서 더 자주 만나는 이름은
유리명왕입니다.
여기에는 두 겹의 뜻이 겹쳐 있습니다.

 

유리명왕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전승에서 유리(琉璃)는 ‘유리’라는 소리 그대로 읽히는 한자 표기이며,
빛나고 맑은 보석이나 유리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글자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그를 좋게 포장하기 위해 만든 별명”이라기보다
그의 개인 이름을 한자로 적어 전한 형태로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명왕(明王)은 ‘밝을 명(明)’ 자를 쓰는 칭호로,
보통 사후에 평가를 담아 붙이는 이름(시호 성격)으로 전해집니다.
즉, 유리(본명) + 명왕(사후 칭호)이 합쳐져
‘유리명왕’이라는 한 덩어리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리왕”이라고 부르면 본명 중심의 호칭이고,
“유리명왕”이라고 부르면 본명에 사후 칭호까지 붙인 정식 표기에 가깝습니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 고구려는 ‘계승’에서 흔들릴 수 있었다

고구려는 건국 직후부터 ‘다음 왕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일만큼이나,
왕위를 어떻게 잇는지가 국가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전승 속 유리는 뒤늦게 아버지 주몽을 찾아 고구려로 들어온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창기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
즉 “정통성 논쟁으로 내부가 갈라지는 순간”을 막기 위한 장치처럼 작동합니다.

 

“유리”라는 이름이 계승의 기준이 된 장면

유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에는
“내가 누구의 뒤를 잇는가”를 증명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신화적 장치가 섞여 있더라도 핵심은 명확합니다.
왕위는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초창기에는 공신 세력, 주변 집단, 새로운 질서가 동시에 움직입니다.
이때 왕이 바뀌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유리의 등장은 ‘정복의 영웅담’보다
‘계승의 규칙’을 굳히는 방향으로 서사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유리명왕의 역할: “시작”을 “지속”으로 바꾸기

주몽의 시대가 “길을 여는 시간”이었다면,
유리명왕의 시대는 “길이 무너지지 않게 다지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오래가려면
내부의 질서를 정리하고, 사람을 배치하고,
다음 세대가 납득할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리명왕이 ‘유리’라는 본명으로 오래 기억되는 것도,
그의 이야기가 업적 목록보다
계승과 정통성이라는 핵심 문제에 바로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 왜 ‘유리왕’인가

정리하면 답은 단순합니다.
‘유리’는 그 왕의 개인 이름으로 전해지고,
‘명왕’은 사후에 붙는 평가적 칭호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초창기에는
“누가 왕인가”를 증명하는 일이 곧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리명왕은
한 나라의 두 번째 페이지를 안정적으로 넘긴 인물로 읽힙니다.

 

출처 /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