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서 시작되는 훅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늘 권력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실무형 인재는 “이 자리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을파소의 유명한 대목이 딱 그 지점에 걸립니다. 그는 낮은 관직을 받기보다, 국정을 움직일 책임과 권한을 함께 요구했습니다.
이 장면은 야망이 아니라 기준을 보여줍니다. 책임을 지려면, 권한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감각입니다.
인물 정의
을파소(乙巴素)는 고구려에서 국상(國相)으로 활동한 인물로, 고국천왕 시기에 발탁되어 국정을 총괄한 재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그가 191년(고국천왕 13)에 안류의 추천으로 국상에 임명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출신 서술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서압록곡 좌물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전해지며, 유리왕 때 대신이었던 을소의 자손으로도 소개됩니다.
정리하면, ‘귀족 가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길을 걸었습니다. 왕이 필요로 한 것은 혈통보다, 국가 운영을 안정시키는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안류가 자신을 대신해 을파소를 추천했다는 대목은, 한 사람의 등용이 ‘추천 네트워크’와 ‘검증된 평판’ 위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로 치면, 위기 때 필요한 인재를 평소에 찾아두는 인사 시스템의 중요성을 말해 줍니다.
결정적 변곡점
고국천왕 대에는 왕비족과 연결된 세력(연나부)의 반란이 진압된 뒤, 왕권을 중심으로 질서를 재정비해야 하는 과제가 컸다고 설명됩니다. 이런 시기에는 “누가 옳은가”보다 “어떻게 흔들림을 멈추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우리역사넷의 사료 해설은, 왕이 을파소를 불러 중외대부로 삼으려 했지만 을파소가 관직이 낮아 뜻대로 국정을 이끌기 어렵다며 거절했고, 결국 왕이 그를 국상으로 임명해 전권을 위임했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을파소의 태도는 단순한 ‘자리 욕심’과 다릅니다. 직함이 아니라, 정책이 실제로 돌아가게 만드는 집행 권한을 요구한 것입니다.
기록에는 새로 등용된 을파소를 미워하는 구신과 종척의 반발도 등장합니다. 새 사람을 들이는 순간 생기는 갈등을, 왕과 국상이 함께 견딘 셈입니다.
여기서 배울 점은 ‘완벽한 합의’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합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굶주림과 불만이 먼저 커집니다. 을파소는 갈등을 없애기보다, 갈등이 폭발하지 않게 규칙과 집행의 속도를 맞추려 했습니다.
공동체를 움직인 방식
초기 고구려의 국정 운영은 5부 세력의 합의적 성격이 강했다고 해석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합의’가 장점이지만, 위기 때는 ‘결정 지연’이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을파소는 특정 부(部)의 대표라기보다, 왕을 보좌하는 국상으로서 다른 부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역할로 그려집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설득하고 규칙을 정리해 “움직이게” 만드는 조정자였습니다.
그 조정의 핵심은 감정 관리가 아니라 절차 관리입니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다음 달과 다음 해에도 같은 기준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핵심 해설
을파소를 오늘에 연결해 주는 키워드는 ‘제도’입니다. 우리역사넷은 진대법(賑貸法) 시행과 관련해, 사료에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국상 을파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그가 국상으로 재임하던 때 진대법이 도입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진대법이 던지는 운영의 교훈
- 취약 시점 표적화: 가장 힘든 시기(춘궁기)에 제도가 열려야 합니다.
- 지속 가능한 순환: 한 번 주고 끝이 아니라, 제도가 다시 채워져 다음 사람을 돕게 해야 합니다.
- 기준의 공개: 누가 더 불쌍한가가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을 살려야 제도가 산다’는 현실 감각입니다. 농민이 무너지면 경작이 줄고, 경작이 줄면 곡식이 줄며, 곡식이 줄면 다시 빈곤이 늘어납니다. 진대법은 이 악순환의 첫 고리를 끊기 위한 최소 장치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왕권 강화, 사회적으로는 민생 안정이 동시에 필요했습니다. 을파소의 가치는 이 둘을 따로 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민생이 안정되어야 국가가 오래가고, 국가가 오래가야 민생도 지켜집니다.
을파소의 공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운영 감각’에 있습니다. 정책이 감정에 붙으면, 그날의 인기와 그날의 분노에 흔들립니다.
반대로 정책이 규칙으로 굳으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도움을 주는 사람의 피로도 줄입니다. 공동체는 이렇게 오래 갑니다.
오늘날
오늘의 춘궁기는 계절이 아니라 구조에서 생깁니다. 월말 현금흐름, 갑작스러운 의료비, 고금리 이자, 비수기 매출 공백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개인도 ‘나만의 진대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위기를 기다리지 말고, 위기가 반복되는 구간을 먼저 표시하고, 그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규칙을 두는 것입니다.
조직과 국가도 같습니다. 긴급 지원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신청 절차, 대상 기준, 회수·지속 재원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다음 위기’에서 또 작동합니다.
을파소를 존경하는 이유 3가지
- 권한과 책임을 묶어 생각했습니다 — ‘자리’가 아니라 ‘집행’을 요구했습니다.
- 갈등을 견디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 귀족 반발 속에서도 국정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 민생을 제도로 보았습니다 — 구휼을 시혜가 아닌 운영 규칙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오늘 바로 실천 3가지
- 내 삶의 취약 구간을 달력에 고정 — 월말·비수기·큰 지출 달을 표시하고 선제 대비합니다.
- 비상자금을 ‘규칙’으로 — 자동이체로 최소 금액을 유지해 위기 때 선택의 질을 올립니다.
- 도움도 지속 가능하게 — 일회성보다 작은 정기 후원을 우선해 통로를 넓힙니다.